2015. 12. 3. 09:58 Volatile

눈 이야기

어렸을 적은 눈을 참 좋아했었다

눈이 겨울마다 많이많이 내렸으면 하는게 소원이었다

그리고 군대를 가고......눈이 정말 싫어졌다

한쿡 남자들의 정형적인 패턴

군대를 다녀오고나서 눈이 싫어졌어요 그것을 나도 겪었다


눈이 내리는 즉시 새벽이건 뭐건 자고 있던 따뜻한 침낭속을 박차고 나와 밖으로 빗자루를 들고 눈이 쌓이지 않았더라도 밤새 미친듯이 아스팔트 도로를 미치도록 빗자루질 하는 이 미친짓을 하니 눈이 싫어졌다

아주 얇은 자그마한 눈이 살살 내리는데 도로를 2열로 길게 서서 주욱 쓸어내며 부대 입구까지 간다

그러면 눈이 내리는 중이기 때문에 뒤를 돌아보면 눈이 다시 도로 위에 얇게 쌓여있다

다시 부대입구에서부터 출발해서 눈을 주욱 쓸어내며 부대 안쪽까지 들어간다

다시 뒤를 돌아보면 눈이 내리는 중이기 때문에 얇게 도로위에 보일락말락 쌓여있다 ㅠㅜ

무한 반복...... 음 미칠것 같다


이건 내리는걸 치우는 재미라도 있지 가끔은 눈이 아스팔트에 닿는 순간 녹아서 없어지는데 치워야하는 경우도 있다

새벽에 일어나서 맨 바닥을 마구 휘젓는다

보이지 않는 가공의 적을 나의 무기로 그어낸다

아 뭔짓하는건지 ㅋㅋ

새벽에 잠은 오고 너무 춥고 피곤한데 싸리비를 들고 덜덜 떨면서 산속의 아스팔트 도로를 쌓이지도 않은 눈을 치우며 지새운다 꺄하하하하하하


하는 이유는 알겠다만 조금 쌓인 후 부터 하는게 효율적이고 훨씬 낫지 않을까

효율성을 생각해보니까 또 기억이 나는게 하나 있다


부대 내에는 운동장 같은게 있는데 가끔 폭설이 오면 거기에 눈이 엄청나게 쌓인다

아스팔트 도로는 1순위로 제설을 해야하기 때문에 폭설이고 뭐고 항상 깔끔하지만 운동장은 우선순위가 도로에 비해 낮기 때문에 눈이 엄청나게 쌓이게 된다 그걸 치워야하는데 말이다


내가 있었던 부대는 포병여단이었는데 부대 몇개가 바로 찰싹찰싹 붙어있는 구조였다

바로 옆 부대는 완벽히 같은 일을 하는 부대임에도 불구하고 뭔가 멋진 제설하는 차량도 있고 트럭에다가 눈을 긁어모을 수 있도록 부대의 어떤 능력자가 직접 만들어 붙인 허접하게나마 장비 같은 것도 있었는데 우리 부대는 그런거 없었다


왜냐고? 그런거 하면 기름이 들거든!! 기름을 아끼기 위해 인력으로 해결해버리도록 무씩하고 아주 비효율적인 방법으로 우리 부대는 돌아갔다

기름을 적게 써야 부대 운영을 알뜰하게 잘 했다고 성적표가 딱 눈에 보이게 남으니까 말이다 ㅎㅎㅎㅎ

여튼 옆 부대는 눈 오면 트럭과 제설차로 일단 슥슥 눈 쓸어버리고 나머지는 사람들이 샥샥 정리하고 빨리 끝냈다

그러나 우리 부대는 하루 웬 종일 미친 개짓을 했다

정말 너무 힘들었다 체력적으로 정말 고되다 일과시간에 하는 눈 치우는 작업은 뭐 나쁘지 않은데 문제는 쉬밤 항상 이런 눈 치우는 작업은 하루 웬종일 밤 늦게 자기 직전까지 한단 말이다

가장 미쳐버릴꺼 같은 일은 그렇게 3 ~4일간 열쉼히 눈을 한쪽으로 몰아서 치워놓는 도중에 눈이 다시 하늘에서 내릴 때다

그러면 꺄하하하 으헤헤헤헤헤헤 하고 다들 갑자기 웃는다 막 다 웃는다 

눈이 너무 좋고 행복해서 웃는....가보다


그리고 눈은 항상 자다가 오거나 주말에 몰아서 온다

군인에게 그나마 쉬는 시간이라고는 주말이나 일과시간 이후 혹은 수면 시간인데 그 시간이 눈이 가장 잘 내리는 시간이다 ^^

열불이 난다


여튼 눈이 너무 싫었다

제대하고나서도 한 3~4년은 눈이 싫었다

그냥 보면 짜증이 났다


그러다가 가끔 아파트 주차장에 쌓이는 눈을 난데없이 경비 아저씨를 도와 치우기도 하고 어찌어찌 살다보니 이제 그 싫었던 기억들이 차차 잊혀지고 옅어져 가고 이제는 다시 천천히 눈이 좋다 :)



Posted by 쵸코케키

블로그 이미지
chocokeki
쵸코케키

공지사항

Yesterday
Today
Total

달력

 « |  » 2024.4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