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5. 25. 22:56 Volatile

Mj





대한민국, 서울.

4월 30일 일요일, 오후 2시경.

오늘도 어김없이 선생님의 금과옥조를 좆아 학원으로 향하는 학생들의 모습은 유쾌해 보인다.
그런 학생들의 열의를 마음 속에 키핑하고 환한 웃음과 명쾌한 강의로 그들의 학습욕을 충전시켜 주는 학원 선생님들의 얼굴에는 삶에 대한 보람이 싹트고 있다.
지금도... 대한민국 서울, 아니 전국에 자리한 여러 학원들에서는 나라 발전에 기여할 젊은 동량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라는 것은 현실의 시궁창에 영원히 간직해 두자.

대한민국 서울, 동작구, 사당동의 어느 외진 골목에 자리한 +4강 낡은 5층 빌딩.
그 중에서도 4층에 똬리를 틀고 있는 한 종합 학원.

"y=cos세타는 y=1-sin세타라는 사실은 다들 알고 있겠지? 이 문제나 이런 유형같은 경우에는 이 공식을 이용하여 풀면 되는, 참 쉬운 문제라는 것이라는 것이라는것이라는 것이라는 것이라느은~ 것이야. 아 유 언더 스태앤?"

"예~에이."

401호실에서 젊은 선생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뒤이어 힘없고 패기 없어 보이는 여러 학생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저 잉여인간 중에서도 낙오자로 분류될 빌어먹을 선생 같으니라고.'

대체 저 선생은 왜 선생질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 갈 정도로 존~나고 못 가르친다.
가고 싶지도 않은 학원을 부모의 불안에 떠밀려(마치 영화 300의 한 장면을00 연상시키는)여기까지 오게 된 학생들의 공부욕을 팍팍떨어뜨리는 강의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 녀석!
왜냐고?

'저 생퀴, 답지에 있는 풀이를 냅다 베껴 풀이하고 있거든!'

답안지에 나와 있는 풀이 포인트를 그대로 베껴 말하고 있는 게 딱 보인다. 마치 대본을 외우고 연기를 하는 연기자마냥, 칠판에는 답안지에 씌여져 있는 공식과 풀이법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베껴 쓰고 있다!
남들이 다 알고 있다는 것을 눈치를 못 채고 자신이 마치 기가스터디의 명 강사라도 되는 마냥 아니, '나는 기가스터디는 물론 터치미, 섹튜, ebs에 초청될 만큼 남들과는 확연히 다르고 획기적인 강의비법을 알고 있는 명 강사이지만 세상은 날 알아주지 못해 이런 곳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하는 사상을 잔뜩 가슴에 품고 강의하는 듯한 한탄성의 얼굴을 하며 '다음 문제로 고고싱!'을 힘없이 외치고는 칠판을 지워 가는 그의 모습은 애처롭다 못해 불쌍해 보이기까지 한다.

"선생님, 그냥 전업을 심각하게 고려해 보심이..."

순간 이런 중대한 발언을 해 버리는 충동을 강하게 들었던 나는 그 대신 내 짝꿍 재웅의 낙서장(혹은 자기 짤방 콜렉션 혹은 수학문제 연습장 혹은 오답 노트로 적절히 하이브리드 하게 사용되고 있는)에 글을 썼다.

재웅이 그것을 보더니 피식 하며 리플을 달았다.

<그저 웃지요.>

'웃지요' 옆에 'ridicule'이라는 수식어가 붙어야죠.

 

 

 

강의가 시작된지 30분이 지났다.

빌어먹을 선생은 어느 순간 80%에 달하는 아이들이 꿈나라로 가는 요단강을 건너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는지 손뼉을 짝짝 치며 외쳤다.

"모두들 스탠드 업!"

웨이크 업을 잘못 말한 거겠지.

그의 말에 잠을 자고 있던 학생들을 위시한 다른 학생들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자기 자신의 실수를 알아챈 것일까?
그의 얼굴이 약간 붉어진 것을 난 똑똑히 봤다!

"얘들아, 일어나라! 오늘 수업을 여기까지 하고, 너희들이 좋아하는 이야기를 해 주마!"

수업이 끝났다는 말에 아이들과 나는 환호성을 질렀다.

그것을 자신에 대한 존경이라고 생각했을까, 선생이 씩 웃음을 지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너희들 게임 뭐뭐 하냐?"

웬 게임 타령이오?

"던파요!"

"디엔에프!"

"던전 앤 파이더데스!"

"네오플의 주 수입원이요!"

"도트 따위로 돈지랄을 하게 만드는 게임이요!"

"같잖은 스토리로 병맛같은 애니를 만들어버린 게임이요!"

"김대건이 신이 되어 유저들을 농락하는 게임을 하고 있어요!"

오호라! 거의 모든 아이들이 던파를 하고 있었다. 나도 몰랐던 사실이었다!
애들도 그걸 몰랐었던 것인지 서로에게 서버가 어디냐는 둥 쩔 좀 해주라는 둥 순간적으로 소란이 일었다.

"오! 너희들도 던파 하는구나! 이 선생님도 던파를 한단다! 무려 만렙이 6개나 있다!"

미친! 애들을 가르치느라 자료를 수집하고 다음 강의를 생각해야할 시간에 게임질을 하는 선생이 너였어?
씨블...저게 자랑이라고...
...자랑은 맞네.

"아무튼, 너희들이 던파를 한다고 하길래 말이 좀 통하겠구나."

선생은 주위를 한번 휙 돌아본 다음 입을 다시 열었다.

"너희들, 이 학원의 수강료가 얼마인지 아냐?"

"30."

"40."

"40."

"30."

2과목을 듣는 애들은 30만원 이고, 3과목 전부를 듣는 아이들은 40만원의 수강료를 낸다.
참고로 나는 그냥 수학 단과라서 15만원이다.

"그래. 적당히 잡아서 30만이라고 치자. 그 돈을 던파 돈으로 계산해 보면 얼마가 나오지?"

음...요즘 시세가 3000원에 100만 골드니까... 적당히 해서 1만원에 300만 골드라 치면...

"대략 9000만 골드인데요!"

"그래, 9000만 골드다. 9000만 골드! 이 돈이면 케레스 세트를 사고, 레어 아바타 세트를 살 수 있는 돈이다!"

"우와~"

거기까진 생각하지 못했는지, 주위에서 감탄성이 터져 나왔다.
지금 저 녀석들 머리에서는 한달 수강료를 어떻게 빼돌리면 쾌적한 던파라이프를 즐길 수 있겠지라는 상념에 빠져들고 있을 것이다.

선생이 말을 이었다.

"그 정도로는 내가 하고 싶은 뜻을 잘 모를 수 있겠구나. 음...좋아, 너희들이 던파를 플레이하면서 가장 많이 쓰게 되는 소모품, 무색 큐브 조각으로 고찰해 보자."

무큐?

"요즘 무큐 가격이 얼마냐?"

"서버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대략 싸게 사서 100 골드요.

"마침 계산도 편리하게 만드는 가격이구나. 좋아, 너희들 한달 수강료 30만을 던파돈으로 바꿔 9000만 골드를 만들었다. 그 돈을 전부 무큐를 사재기 하는데 꼴아박았어! 그럼 무큐는 몇 개냐!"

"90만개요! 헐."

"그 90만 개의 무큐를 30으로 나눠봐!"

"3만요!"

"그걸 24로 나눠봐!"

"1250요!"

"그걸 60으로 나눠봐!"

"20.83333333...요!"

"그걸 다시 60으로 나눠봐!"

"0.34722222....요!"

설마... 이 계산은!

"결론! 너희들은 한달에 90만개, 하루에 3만 개, 1시간에1250개, 1분에 20개, 1초에 1/3개의 무큐를 쓰고 있다는 것이다!"

"헉!"

"헐!"

"학!"

"항!"

"할!"

여기저기서 경악에 찬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중에서도...

"내가...내가 1분마다 더블 미니 거선풍 부메랑버전을 10번씩 쓰고 다녔다니!"

"내가...내가 3초마다 봉산탈춤을 쓰고 다녔다니!"

"내가...내가 6초마다 부동스핀을 쓰고 다녔다니!"

"내가...내가 15초마다 마법소녀 변신(1화마다 써 주는)을 쓰고 다녔다니!"

"내가...내가 9초마다 크루가 신이 되게 만들어주는 짜가 고통의 희열을 쓰고 다녔다니!"

"내가...내가..."

"내가..."

"내..."

패닉!
그의 선언에 던파를 하고 있던 모든 아이들이 책상에 고개를 처박고 눈물을 흘렸다.
물론 재웅과 나도 그 대열에 끼고 있었다!

이런 반응을 예상했던지 선생이 씨익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자, 어떠냐? 너무 와 닿지?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공부에 매진하여 무큐 90만개에 어울리는 공부를 하자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재웅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외쳤다.

"선생님! 저는 결심했습니다!"

"오오~ 여기 공부에 뜻을 둔 학생이 1호기가 탄생..."

선생의 말꼬리를 씹은 재웅이 다시 외쳤다.

"학원에 갖다 바치는 30만원이 별 거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나 아까운 것이었을 줄이야! 선생님, 저는 이 학원을 끊어버리고 차리리 ebs인터넷 강의를 무료로 듣

겠어요!"

"...어?"

선생이 어리둥절해 하는 가운데 다른 아이들도 의연히 일어나 외쳤다.

"선생님! 저도 결심했어요! 어서 빨리 이 학원을 끊고, 인강을 듣겠어요!"

"선생님! 저도..."

"선생님! 미(me)도!"

나도 일어나 외쳤다!

"선생님! 그간 고마웠습니다! 선생님의 마지막 강의! 정말로 제 소울에 와 닿는 것이었습니다. 열심히 인강을 들어 좋은 대학에 갈게요!"

"...어라?"

재웅이 일어나 아이들에게 외쳤다.

"마침 오늘이 30일, 마지막 강의 날이다! 우리 모두 부모님들께로 가서 자신의 확고한 공부 의사를 밝히고, 인강을 듣자!"

"오우!"

"야...야들아...얘들아...?"

우르르르르!

삽시간에 교실을 빠져나가버린 우리들...우리 학생 군단은 집으로 가기 전에 일단 피씨방에 들러 한판 던파를 즐기고 가자는 뜻을 모아 1시간에 1500원 짜리 피씨방을

찾아 발을 맞춰 학원 계단을 밟아댔다.

"아...우리 학원은 망했다아."

선생의 한탄조가 섞인 통곡이 이제는 비어버린 교실 안을 울려 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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