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30 넘으면 몸이 급격히 늙는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 이야기가 정말 사실인거 같다

30세가 된 이후로 3~4주 마다 꼭 주말 하루 정도는 앓고 있다

왜 이런지도 잘 모르겠고 어떻게 해야 좋아지는지도 모르겠다

참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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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쵸코케키



갔다

고민이 다소 되긴 했지만 브람스 교향곡 4번이라서 갔다


공연이 시작되었다

관계자가 나와서 대본에 적힌 영어발음 한국어로 세월호를 추모하는 곡을 연주할테니 박수를 치지 말아달라는 부탁을 하며 예정에 없던 bach의 g선상의 아리아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에반게리온 air에 나오는 그 곡 맞다

여기저기서 많이 쓰이는 그 흔한 곡

그래서 평소 어디선가 들려와도 그냥 무시하였던 곡

그렇게 좋은지도 모르겠고 그냥 저냥이라 생각했던 음악


그런데 실제로 들으니 압도적인 선율의 아름다움이 공간을 넘어, 앞좌석 계단을 발끝사뿐 걸어 내게로 다가온다

내 바로 앞에서, 뒤에서, 옆에서 살포시 기대며 나에게 그동안 들었던 소리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기억에서 지워버리라고 내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어떻게 공간에서 그런 소리가 날 수 있는지, 각각 현악기의 떨림이 동시에 차분히 맞아들어가면서 점점 소리가 합쳐지고 커진다 

커진 그 울림이 가벼이 공기를 타고 내게 다가온다, 조용히 울려 모두에게 스며든다

음악은 감상자의 기분이나 장소의 분위기에 따라 많이 다르게 들리지만 이건 그런 예외적 상황을 넘어서는 압도적인 사운드다 

나같은 초등학생 수준의 국어 능력으로는 묘사할 수 없는 갸냘프며 파르르 떨리는 아름다움

너무 극도로 슬프지도 않고, 감정을 강제로 격하게 만들거나 울분을 표하지도 않고

추모를 위한 절제된 고요에 아름다운 선율이 더해져 엄숙함을 아름답게 만들기까지 한다

연주가 끝나고 수백명의 사람들과 연주자들이 묵념을 하며 조용히 있을 때 소리는, 음악은 완성되었다


정말 놀랍기까지 했다

그 고요가 너무 좋았다(물론 조용히 떠나간 분들을 위해 묵념을 하는게 맞지만)



bach와 정적을 떠나보내고 베토벤이 시작되었다

신났다


빵빵 터지는 소리와 콘트라 베이스와 드럼 그리고 관악기와 바이올린 현악

너무 신났다


그런데 너무 신나게 들었다

옆에 앉은 여자한테 주의를 들었다


이해가 안되는게 음악이라는게 박자가 있고 흥이 있는거다

연주하는 분도 잘 보면 몸을 흔들어가며 선율에 빠져서 온 몸을 흔든다

슬픈 음악은 침울해지고 슬퍼지고 눈물이 나오고 가슴이 울리는게 맞는거고

신나는 음악은 애초에 흥이라는게 있는거다 그냥 몸을 흔드는게 정상인거다


그런데 내가 뭐 발을 떨면서 들은거도 아니고 헤드뱅잉을 하면서 들은거도 아니고 단지 내가 앉은 자리에서 내 신체가 차지하는 공간에서 무릎위로 가벼이 손목 손가락을 까딱이는 정도로 박자를 즐겼는데 주의를 받았다

음악을 어떻게 들으라는거지? 대체 음악을 어떻게 듣는걸까 그 사람

사람마다 예민한 정도가 다르긴하다만 내심 안쓰러웠다 그 분이 클래식에 대한 지식은 나보다 많을지 몰라도 과연 음악을 즐기러 온게 맞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신나는 클래식이 그냥 정좌 자세로 앉아서 들어야하는 음악이라면 참으로 이치에 맞지않는 당황스러운 음악일 것이다


결국 그 분은 2시간 내내 마지막 브람스 4번 교향곡이 끝날 때까지 계속 안절부절 못 하면서 들었다


여튼 그게 중요한게 아니라 브람스 시작했다

베토벤은 많이 안 들어서 잘 모르겠다

크레머씨가 바이올린으로 솔로 카덴짜 연주하고 했다던데 사실 바솔관심없어서 ㅈㅅ

나 사실 협주 아니면 안 좋아해 ㅠ_ㅠ


길고긴 여정이 끝나고 브람스가 시작되었다

아 브람스 형님


4번 1악장 시작되면서 처음부터 거대한 소리의 향연에 바로 감동이 몰아쳤다

거대한 콘트라 베이스들이 뿜어내는 극저음

내 방의 북쉘프 스피커 따위로는 도저히 묘사 자체도 할 수 없을 만큼의 강력하게 깔리는 진동이 퍼지는데 군침마저 돌았다


클래식 공연을 가기 전에 궁금했던 것이 있다

1. cd에서 들리는 소리가 과연 본래 연주 소리보다 더 큰 소리일까 아니면 비슷한 음량일까?

-> cd에서 들리는 소리보다 더 크다, 그리고 더 넓다 되려 cd에서 들리는 소리는 혼이 빠진 작은 소리


2. 음질 차이는?

-> 너무 압도적으로 실황이 좋다. 이 부분이 이해가 안갔는데 정말 압도적이다

집에서 사용하는 오디오 시스템이 대략 500만원정도 되는 입문기인데 얘네로 발 끝도 못 따라간다

특히 콘트라베이스 같이 애초에 악기 자체의 크기가 인간 몸집보다 큰 녀석들의 저음을 쬐깐한 가정용 스피커로 묘사하는건 걍 물리학적으로 불가능하다

그 현의 세밀함이나 미세함 모든게 통틀어서 그냥 스피커와 실황이랑 비교가 안된다

이어폰은 걍 깝치지도 말자, 이어폰 2~300만원짜리 그런 장난감 가져와도 실황에서 펼쳐지는 그 압도적인 악기들의 향연의 감동을 1%도 못 재현한다

sacd건 뭐건 소용x

괜히 수억원짜리 스피커들이 사람 키보다 큰게 아니었다 다 이유가 있던 것이었다

정말로 그런 스케일 있는 소리를 만들어내려면 그정도 크기의 울림통이 필요한가보다


예전 풍월당에서 수억이 넘는 오디오 시스템과 스피커로 들었을 때 악기 소리들이 의외로 저음이 많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번 클래식 공연을 듣고 오니까 그 스피커에서 나왔던 소리 처럼 의외로 저역이나 중역이 많음을 느꼈다

내가 흔히 익숙했던 소리는 가정집 작은 스피커, 이어폰으로 작은 유닛크기로 인해 저역을 충실히 낼 수 없었는데 여태 그 병약한 소리가 벨런스 맞는거라고 착각했었다


3. 졸릴꺼 같은데

그렇지 않다 너무 재미있다 악기를 어떻게 연주하는지 직접 볼 수 있다는게 이렇게 재미있는줄 몰랐다

단순히 cd로 들으면 절대 모를 재미다 

팀파니를 치는거도 어떻게 치냐면 매번 다르다 울림을 살살 내기 위해서 통통 치기도 하고

울림을 그치게 하기 위해서 손으로 중간에 막기도 하며

리듬을 따라서 가볍게 율동을 하면서 치기도 한다 

블루레이로 실황 나오는거 보는거 너무 재미없다

잠온다 그런데 실제로 보면 다르다

내 생각에는 클래식 영상 촬영하는 사람들 다 반성해야한다

어떻게 그렇게 재미없는 화면구성, 영상 편집을 할 수 있지?

현악을 연주할 때 활을 켜고 뚱기고 그게 여러명이 동시에 하는데 마치 군악대가 단체로 연습한 것 처럼 

동시에 활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면서 윗쪽 상단의 콘트라베이스가 슬쩍 오른쪽 사람을 보더니 하나 둘 셋 

박자에 맞춰서 리듬에 같이 살짝 껴들어가며 소리를 내기 시작하는데 와 너무 즐거워서 행복하다

그러면서도 그 소리의 펼쳐짐이 온통 눈앞에서부터 귀로 들어오는데 그 청각의 쾌감이 넘쳐나서 혀에 침이 고인다

느껴본적 있는가? 청각으로 느낄 수 있는 쾌감, 자극의 량이 최대치를 넘어서 뇌가 버티지를 못하고

혀에까지 침이 고이는, 소리가 음악이 혀에 감겨 들리는 그런 경험을 해본적이 있는가?

안 믿기겠지만 정말이다 그런 경험이 가능하다


집에서 들어왔던 잰더링 할아부지의 세밀한 고역에 중심을 더 둔 연주와 다르게 이번에 들은 연주는

남성미 넘치는 저역과 중역 맛깔스러운 두터움에 빠져 행복했다

그렇다고 해서 현대음악의 힙합 처럼 저음 자체를 비트로 삼아 그 외의 음역대가 텅빈 그런 알루미늄 느낌의 모형이 아니라 모든 음역대가 살아있고 서로 춤을 추며 휘어 돌아가는 행복한 환상의 벨런스였다


특히 시각적으로 감동적이었던 부분은 2악장이었는데 연주자들이 갑자기 모두 활을 내려놓고 손으로 바이올린, 콘트라 베이스를 손가락으로  뚱기고 있었다

여태까지 현으로 삐이~ 하면서 길게 소리를 내던 악기들이 관악의 조용한 흐름에 따라서 수십명의 현악 연주자들이 손가락으로 뚱뚱 현을 뚱기는데 그 모습이 동시에 펼쳐지며 너무나도 멋있고 장관이었다

삐이하는 길게 세로로 퍼지는 소리와 다르게 뚱기면서 동그랗게 구형으로 다가오는 울림에 빠져 음과 내가 하나가 되어가는 것 같았다

뜨옹뜨옹 뚱기는 소리가 마치 공기를 소리로 계단 삼아 나에게 성큼성큼 걸어오는 것 같았다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자 갑자기 모두가 활을 들더니 살살 뚱기던 바이올린쪽에서 하나 둘 미끄러지며 활로 연주를 시작하자 커다란 저음의 악기들을 가진 연주자들도 하나 둘 그 소리의 변화에 동참해 같이 미끄러지며 하나로 합쳐지기 시작했다


우측끝에서 시작된 그 흐름이 좌측으로 퍼져가며 모습과 소리가 바뀌는 광경은 정말 직접 봐야했다


3악장이 시작되면서 위트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다시 나는 흥분에 타올라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음악을 들었다

트라이 앵글 연주자가 애써서 팅팅팅팅 연주를 하는데 얼마나 귀엽던지

그리고 펭귄 체형을 닮은 귀여운 지휘자 아저씨도 몸을 박자마다 발끝을 살살 들며 배를 퉁퉁 퉁기면서 요기 저기 휙휙 파트별로 신호를 내리는데 그 율동이 참으로 귀여웠다 유머있는 3악장의 선율과 잘 어울리는 최고의 공연이었다



다시 4악장 살포시 진지해지면서 진동하는 저음의 콘트라 베이스와 분위기를 앞서 해설해나가는 바이올린 소리들이 합쳐져 내 시야를 붉혔다 이제 마지막이라고 브람스 교향곡 4번은 이제 거의 막바지에 왔다는 사실이 떠올라서 너무 안타깝기도 했고 아쉽기도 했다

그 복잡한 마음을 훑고 지나가는 소리들이 힘차게 다가오고 관악기들이 즐거운 시간이었다고 마무리에 어울리는 곡조로 이야기를 꺼내자 현악기들이 아쉬움을 토로하며 반대 방향으로 가는듯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자 다시 다소 격렬한 높은 음으로 다가서오자 격렬한 저음으로 분위기를 진지하게 만들며 모든 악기들이 한데모여 합쳐 절도있게 춤을 추




음 회사가야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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